2021년 12월 30일 방영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 11회에서는 신여성으로 불리우는 서양화가 나혜석의 이야기가 <세기의 이혼 스캔들 -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모던걸>이라는 주제로 방영됩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신문에 실려 대중에 알려지는 퀸카였으며,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니고 취미라고 하는 파격의 끝판왕으로 예고가 나왔는데요, 과연 화가 나혜석이 어떤 사람이었길래 이런 타이틀이 붙는 것일까요?


나혜석, 그녀는 누구?
화가 나혜석은 1896년 4월 28일 생으로, 현재의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서 출생하여 향년 53세의 나이로 1949년 12월 10일에 사망하였습니다. 배우 나문희가 나혜석의 조카손녀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문희 아버지의 고모라고 하죠. 5살 때 병환으로 떨고 있던 나혜석을 본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숨진 곳은 무연고자 병동. 배우자와 아들, 아버지, 큰오빠, 작은오빠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가 왜 무연고자 병동에서 죽어야만 했을까요?
그녀는 수원 삼일소학당과 서울 진명여학교 졸업 후 일본의 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귀국하여 정신여학교 미술 교사를 하기도 하고, 김일엽과 잡지 <신여자>를 창간 및 발행하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해왔죠. 당시 흔하지 않은 프랑스 유학을 가기도 했고, 세계여행을 한 후 여행기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결혼 후 불륜을 저질렀고, 그에 대해 "이혼 고백서"라는 글을 통해 세상에 폭로를 했습니다. 파격적이었던 이혼 고백서 때문에 부정한 여자로 낙인 찍힌 그녀는 가족들에게도 버림 받은 채 홀로 죽어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어떤 사랑을 했던 걸까요?
김우영과 재혼할 때 내걸었던 4가지 조건
나혜석은 처음에 깊이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최승구라는 시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결핵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이후 화가로 활동하던 나혜석은 본인에게 계속 구애를 해온 일본 유학파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걸은 조건이 있었는데요. 3번째 요구까진 그렇다 치고, 네번째 조건은 파격이었습니다.
<김우영과 결혼 시 걸었던 조건>
첫째. 평생 나만을 사랑해 달라.
둘째.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달라.
셋째. 시어머니와 김우영의 전처 딸과 함께 살게 하지 말것.
넷째. 첫사랑 최승구의 묘에 묘비를 세워줄 것.
하지만 이 조건을 받아들인 김우영. 정말 그녀를 사랑했나봅니다. 1920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제공한 결혼식의 사진을 볼 수 있었어요. 연지곤지 찍고 전통 혼례해야 할 것 같은데, 요즘 결혼식의 모습과 비슷함이 있는 결혼식 사진이네요.
해외연수를 갔다가 닥친 악몽
결혼 후 아이들도 낳고 일본 외교관으로 잘 나가던 김우영 곁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나혜석이었습니다. 당시 외교관들에게 보상차원에서 해외 연수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김우영 부부가 그 특혜의 대상이 되어 유럽을 가게 됩니다.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그 시대에 유럽이라니, 하지만 이 부부에게는 악몽같은 일이 생기게 되죠.
최린. 3·1항쟁 당시 민족대표 33명 중 하나였지만 변절한 사람입니다. 최린은 당시 30개국 여행 중이었는데 마침 프랑스 파리에 있었죠. 유럽에 간 김우영은 독일로 법학 공부를 하러 가고, 나혜석은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 때 김우영이 최린에게 아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당시 최린 1878년 생으로 나혜석보다 18살이나 많이 차이가 났었기 때문에 김우영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은 듯 하나, 놀랍게도 이 둘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겁니다. 좁은 한인 사회에서 나혜석이 최린의 작은 댁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김우영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김우영은 몰래 파리에 들어왔고 둘의 불륜을 목격했다고 하죠. 이후 귀국하여 둘은 이혼을 하게 되었지만, 이혼의 사유가 된 최린은 혼자가 된 나혜석을 부담스러워 하며 떠났습니다. 이에 분노한 나혜석은 최린을 "정조 유린죄"로 당시 돈 12,000원의 손해배상과 함께 고소를 합니다. 최린은 이 기사를 막으려고 동아일보 기자를 매수하고 나혜석에게 2천원의 돈을 주며 취하를 종용하지만, 나혜석이 패소하였습니다.
사회에서 고립 되어버린 나혜석, 그리고 이혼 고백서
나혜석이 최린에게 보냈던 편지가 문제가 되어 퍼져버린 소문이었습니다. 최린이 편지 온 사실을 주위에 떠들었고, 소문이 와전되면서 김우영에게 들어갔던 것이었죠. 분노한 김우영은 나혜석을 쫓아내고 자식들과도 인연을 끊어버렸습니다.
나혜석은 이 때문에 사회에서 고립되었고 힘들게 살아갔으나, 불륜 상대였던 최린 그리고 남편 김우영은 결혼 중 기생을 집에 끌어들인 전적이 있음에도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나혜석의 분노는 여기에서 시작이 되죠. 잡지 <삼천리>에 "이혼 고백서"라는 글로 폭로를 해 버린 것입니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합니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 상대자의 잘못을 논할 때 자기 자신이 청백할 것이 당연한 일이거늘 남자라는 명목하에 이성과 놀고 자도 관계없다는 당당한 권리를 가졌으니 사회제도도 제도려니와 몰상식한 태도에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아. 남자는 평소 무사할 때는 여성이 바치는 애정을 충분히 누리다가 체면이나 법률 앞에 서면 어제까지의 방자하고 즐거움을 누리던 몸을 돌이켜 오늘의 군자(君子)가 돼 점잔을 빼는 비겁자요 난폭자가 아닙니까. 우리 여성은 모두 이런 남성을 저주합니다.

<이혼고백서>에는 김우영과의 결혼 생활과 최린과의 만남, 연애, 이혼까지 모든 과정을 샅샅이 공개했습니다. 1920년대에 조선시대의 "남자"들에게 활을 겨누었던 그녀는 이 때문에 가족과 친정오빠에게까지 버림을 받았고, 외롭게 거리를 헤매다 죽고 말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말년에 자식이 너무 보고 싶어 요양원에서 탈출해 거리를 헤매다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조카였던 영문학자 나영균의 인터뷰에 따르면, 모든 가족에게서 완전히 버림받았던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작은오빠 나경석이 워낙 나혜석을 아꼈기 때문에 비참하게 몰락한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화를 낸 것이라 하고, 나경석의 부인이 이를 안타까워해서 나경석이 집에 없을 때 몰래 집에 들이고 보살펴 주었다고 합니다.
이혼고백서 공개 후 전남편 김우영은?
나혜석과 이혼하기 전부터 첩이 있었다고 하는 김우영은 비웃음 거리가 되어 변호사로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공무원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1928년 나혜석의 불륜을 알게 된 김우영은 그 때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나혜석에게 이혼을 통보했던 것이죠.
나혜석은 결혼 전 조건 중 첫번 째, "평생 나만을 사랑해 달라"는 조건을 어긴 것이라며 이혼을 거부했지만, 이혼 하지 않으면 최린과의 간통건으로 고소를 진행하겠다고 하여 결국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혼 때는 재산 분할은 받았지만 위자료는 요구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정조유린'으로 위자료를 요구했죠. 물론 패소했고, 이로 인해 대중들이 나혜석에게 냉정해지게 되었습니다.
나혜석에 대한 평가
시대를 앞서간 여성임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시대에 맞지 않은 너무 진보적인 언행 때문에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돈 걱정없는 명문 부잣집에서 태어나 당시에 흔하지 않은 유학에 세계일주까지 하였으며, 일어 영어 독어 불어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신여성이었습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그녀가 출산을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다"라고 표현한 것도, 시월드를 거부하는 남편에게 내건 조건들도 그렇고, 재혼한 남편과 첫사랑 묘비에 가 함께 참배를 하는 등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을 보였기에 당시 여성들도 그녀의 모습을 곱게 받아들이기엔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도 그녀가 공개한 이혼 고백서에 있는 글의 진의보다는 "다른 남자나 여자와 좋아 지내면, 반면으로 자기 남편이나 아내와 더 잘 지낼 수 있지요"와 같은 발언에 집중해서 문란한 여자로 규정지어버렸습니다.
나혜석거리
경기도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가 있습니다.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 나혜석 여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거리로, 약 300m 정도의 거리입니다. 문화 예술회관, 효원 공원, 야외 음악당 등을 연결하는 공간이죠. 거리 공연과 도로 내 분수대, 음악이 나오는 화장실, 보행자 전용 도로가 있고 주변에 전문 먹거리 식당들이 많아서 만남의 거리로 유명한 곳입니다.
나혜석에 대한 책들
나혜석의 말을 엮은 <나혜석의 말, 여자도 사람이외다> 이외에 유럽여행을 떠나 그 여행기를 적은 <꽃의 파리행>부터 나혜석 작품집 등 나혜석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나혜석의 인생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책을 보시면 좋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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